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IBM PC XT (문단 편집) == 한국에서의 IBM PC XT == 한국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첫 16비트 컴퓨터가 바로 이 IBM PC XT의 [[IBM PC 호환기종|호환 기종]]이다. 1989년 문교부에서 '''교육용 PC를 지정'''하면서 학생용으로는 IBM PC XT 호환 기종을, 교사용으로는 IBM PC AT 호환 기종을 지정했기 때문. 이 사업 이전에도 IBM PC 호환 기종이 업무용 목적으로 한국에 들어와 있었고 [[세운상가]]의 업체들에서도 호환 기종을 생산하고 있었다. 기존의 8비트 PC를 제조하던 대기업에서도 [[삼성전자]]의 SPC-3000을 비롯한 호환 기종을 만들고 있었으나 가격 문제로 보급량은 미미했다. 이 교육용 PC 사업을 기점으로 한국의 개인용 컴퓨터 환경이 IBM PC 호환 기종으로 재편되었는데 이 컴퓨터가 1983년에 나온 것을 생각하면 본격적인 보급은 상당히 뒤늦었다. 이것은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거의 3배로 급성장한 한편 기업체 보급용으로 세운상가조립 16비트 컴퓨터의 단가가 점점 내려가면서, 중산층 가정에서 자녀 교육용 16비트 컴퓨터를 구입할 수 있게 된 시기가 이때였기 때문이다. 이 변화가 매우 심해서, 바로 3~4년 전인 1985~6년께 정부의 각급학교 컴퓨터 보급 정책은 8비트 PC 에 마춰져 있었고, 1988년쯤에 와서 8비트와 16비트가 경쟁했다. 따라서 1989~91년 무렵[* 1992년 이후에는 [[IBM PC AT]] 호환기종이나 [[인텔 80386|386]]급 기종이 주류로 올라오기 시작했다.]에 학생 신분이었던 사람들이 PC를 구입했다면 IBM PC XT 호환 기종이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제조사가 삼성/금성/대우전자[* 대우는 대우전자와 대우통신이 따로 사업을 진행했었다. 대우통신 쪽의 모델은 당시로서는 흔하지 않던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내장한 것이 특색.]였고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1개를 내장했으며 모니터가 흑백이면 거의 맞을 것이다. 상세한 내용은 [[교육용 PC 사업]] 문서를 참조. 이 시기에 도입된 IBM PC XT 호환 기종은 대부분 인텔 8088계열 8~10MHz를 탑재하여 속도 향상을 꾀하였다. 일부러 좋은 부품을 탑재했다기 보다는 8088이 나온지가 오래되다 보니 그냥 10MHz짜리 고속 버전이 일반적으로 구하기 쉬웠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정(...). 그 때문에 일부 게임 소프트웨어는 지나치게 빠르게 동작하는 경우도 있어 CPU 속도를 터보 버튼이나 특정 단축키로 4.77/10MHz를 전환할 수 있도록 만든 기종도 드물지 않았다. 일부는 NEC V20등의 호환칩도 사용했으며 속도가 8Mhz인 경우 십중팔구 이쪽이었다. 인텔 것에 비해 가격이 저렴했을 것으로 추정. AMD호환칩을 장착한 기종도 있었다. 또한 이 시기에는 대기업 제품들을 중심으로 메인보드 설계를 메모리를 256~512KB에서 확장할 수 없는 구조로 만든다던지 확장 슬롯을 4개 정도로 줄인다던지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1개만 설치한다던지[* 위 사양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원래 오리지널 XT 사양은 메모리 640KB까지 확장 가능에 FDD 2개, 혹은 FDD 1개+HDD 1개, ISA 확장 슬롯은 8개다.] 하는 비용 절감이 꽤나 성행했다. 좋게 보면 박리다매를 위한 방법이었지만 나쁘게 보면 [[호갱님]] 등쳐 먹기. 이 시기에 IBM PC 호환기종의 가격이 크게 내려간 것은 사실이나 중소기업 제품들은 대부분 오리지널 IBM PC XT에 준하는 사양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좋게 보기만은 어려웠다. 또한 한국에서는 한글 문제로 미국과 달리 서드 파티 제품인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가 주로 사용되었으며, 이를 개조한 한글 카드도 시중에 많이 나왔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